난 이 책의 지은이가 류시화 시인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법정 스님이 지은이였고 류시화 시인은 법정 스님의 글을 엮은이에 불과했다.
류시화 시인에 대한 원인 모를 반감으로 이 책을 몇 차례 소장기회가 있었음에도 포기했었는데,
내가 책에 대해 오해하고 있던 것이었다.
법정 스님의 책은 어렸을
때 읽어본 무소유가 전부였고,
그나마도 당시에 한자투성이 구판을 구입했던 터라 극히 일부만 이해했을
뿐이었지만,
법정 스님의 이름만으로도 이 책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무소유로 유명한 법정 스님은 1932년 전남 해남에서 출생하셨고,
1956년 정식으로 사미계를
받고 출가하신 선승이며, 자연주의 사상가이고 실천가시다.
법정 스님의
책을 처음 읽었던 게 한자투성이 구판이라 혹시나 하는 걱정을 했지만,
당연하게도 이 책은 한자가 없었다.
이 책은 무소유, 자유, 존재에 대한 성찰 등이 행간마다 자리잡고 있는데,
책의 표지와도
잘 어울리는 내용들이다.
약간 바랜듯한 색감의 표지인데, 책을 처음 받았을
때는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시 표지를 바라보니 정말 이 책의 느낌을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막함, 고요함이 느껴지는 표지. 그리고 책을 읽는 내내 그러한 느낌을 들게 하는 잠언들.
소설책 읽듯이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했지만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이 책은 이렇게 읽을 만한
책이 아니구나, 였다.
잠언 하나하나에 담긴 뜻을 헤아리기에
내가 행한 독서방식은 시간이 부족했다.
손이 잘 닿는 곳에 두고두고,
마음이 복잡할 때마다 마음을 다스르기 위해
한 편씩 읽고 뜻을 곱씹어보아야 할 그런 책,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 하나 버릴
것이 없었지만, 그 중에서도 와 닿는 잠언들 몇 개만 추스르기로 했다.
무소유 혹은 단순과 간소에 관한 잠언 중에 와 닿는 구절들이 있었다.
‘무엇인가를 소유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소유를 당하는
것이며,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뜻이다.’
소유를 당한다는 것까진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얽매인다는 생각은 그 동안에도 해 왔던 것이었다.
예를 들어 책
꽂을 곳이 없어서 책장을 샀는데 빈 책꽂이가 보이니까
그것을 채우기 위해 또 다시 책을 사고 그러면 다시 책장이 부족한 경우가 있었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샀는데, 그것의 기능을 모두 끌어내기 위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지출을 한 경험도 있었다.
.
또 녹슨 삶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말도 와 닿았다.
법구경에 이런 비유가 있다고 한다. ‘녹은 쇠에서 생긴 것인데 점점 그 쇠를 먹는다.’
고여 있는 물은 썩기 마련이고 죽은 꽃은 꽃을 피우지 못하는 것처럼,
나
자신을 가꾸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밖에도 버리기에 너무 아까운 내용들이 참 많았다.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순간순간을 뜻 깊게 보내야 할 것을 느끼게 만든,
‘기회란 늘 있는 것이 아니다. 한 번 놓치면 다시 돌이키기 어렵다.’ 라던가.
지나친 욕심을 경계하는 ‘연잎은 자신이
감당할 만한 무게만을 싣고 있다가 그 이상이 되면 비워 버리는구나’ 하는 부분이라던가.
괴로움이 많은 인간 세계인 사바 세계를 참고 견디는
세계라고 하지만,
달리 말하면 참고 견딜 만한 세상이라며 긍정적으로 승화시킨 부분도 인상 깊었다.
나는 그동안 인연이라면 만날 사람은 어떻게든 만난다고 생각해 왔다.
물론 인연이라는 것이 꼭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고
보면 그동안 이 책을 만날 인연을 거부했지만, 어떻게든 이렇게 만나게 되었다.
이 만남이 전혀 후회되지 않을 정도로 내게 딱 맞는 책이었다.
이번에는
시간이 부족해서 무작정 읽긴 했지만, 시간이 날 때 다시 한 번 읽어보아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불교를 좋아해서 유난히 더 와 닿았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분명 여러 모로 좋은 내용들이 참 많은 책이다.
더 이상 꽂을 공간도 없는 내 책장이지만 그
중에 한 권이 이 책이 되었다는 것이 만족스럽기도 했다.
각설하고 한 마디로 말하자면, 강력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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