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1. 7.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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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어릴 적부터 운동을 잘 못했다.
그렇게 남들보다 운동신경이 떨어지는 것 같진 않지만,
운동 자체를 싫어했었기에 무언가를 배우거나 열심히 하질 않았고 당연히 운동을 못했다.
스스로도 인식하고 있던 현저히 떨어지는 미적감각에다가,
운동마저 싫어했었기에 나의 예,체능 성적은 항상 바닥이었다.
운동..소위 체육이라 부르는 수업시간.
많은 운동중에서도 특히나 싫어했던 것은 뛰어다니는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축구라던가, 달리기와 같이 많이 뛰어야 하는 것은 특히나 싫어했다.
학창시절 내 100m 기록은 18초가량으로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난 달리기를 싫어했고,
달리기와는 거리가 멀다고만 생각했다.
그랬던 나를 최근 들어 달리게 만든 책이 있다.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이 책을 접하게 된 계기는 정말 단순했다.
몇 달 전 올렸던 포스팅 에 적었던 것처럼
1권을 사면 2권을 덤으로 주는 이벤트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우라 시온'이란 작가는 그 전에 잘 알지 못하던 작가였기에,
그 이벤트가 아니었다면 이 책을 접할 기회는 없었을 지도 모른다.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달리기.
그 중에서도 장거리와 관련이 있다.
일본에 별 관심이 없는 나로썬 낯설었지만,
일본에선 꽤나 유명한 것만 같은 '하코네 역전경주'
그 대회에 참가하려는 간세대학 육상부의 이야기다.
단지 육상부가 달리기경주에 나가는 이야기라면 너무나 심심한 이야기가 될 터.
작가는 그 육상부에 다양한 캐릭터를 탁월하게 배치해 두었다.
고교시절 최고의 재능을 인정받았던 유망주인 가케루를 필두로 하여,
수준급의 실력을 지녔지만 부상으로 인해 달리기를 잠시 접어야만 했던 기요세.
그리고 기요세와 함께 생활하던 기숙사의 선배, 동기, 후배.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 보이는 캐릭터소개만으로도 관심을 갖게 만들었을 정도다.
기본적으로 열 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데도,
각각의 개성이 워낙 뚜렷한 인물이기에 혼동을 일으키지 않았다.
간혹 번역서를 읽을 때 등장인물이 조금만 늘어나도 헷갈려 하곤 했었던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간혹 도덕교과서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지나친 친절함이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시종일관 유쾌하면서도 조마조마한 긴장감이 감돈다.
달리기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이토록 제각각인 다양한 사람들이 통할 수 있다는 것.
내가 이 책을 정말 인상깊게 볼 수 있었던 데는,
바로 그 다양한 사람들을 하나하나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달리기, 그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선수들.
그들이 달리기를 하는 것 뿐만 아니라,
선수는 커녕 나처럼 달리기 자체를 싫어했던 평범한 사람들까지도.
달리기라는 것의 매력을 느끼게 되고.
자신의 위치에 걸맞는 만큼의 욕심과 만족으로 달리기를 즐기는.
바로 그러한 모습들이 보기 좋았다.
왠지 나도 그들처럼 달리기를 즐길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까지 들었을 정도로.
공전의 히트를 쳤던 슬램덩크의 북산을 보는 것같은 심정으로,
이 책의 간세대학육상부를 지켜보았다.
말 그대로 극적인 그 순간.
순간.
그 찬란함을 느낄 수 있었다.
눈에 보이는 영상이나 귀에 들리는 음악이 아닌.
단지 책에 적힌 글자만으로!
실제로 이 책을 읽는 동안 아침마다 달리기를 하기도 했다.
느리게 걸을 때와는 다른,
빠르게 스쳐 지나가면서도 그 순간순간 선명하게 새겨지는 풍경들.
서 있다면 느끼지 못했을 강하게 나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
내 심장이 아직 뛰고 있음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게 만드는 거친 심장박동.
내 폐가 아직 숨을 들이쉬고 싶어함을 느낄 수 있게 만드는 호흡...
내가 이렇게까지 빠르게 달릴 수 있었나하는 놀라움..
이렇게 책 속의 인물들이 느꼈던 그 매력을 미약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시원하다, 랄까.
눈이 시리도록 푸르른 청춘의 생생함을 이 책을 읽는 내내 함께 할 수 있었다.
나 또한 청춘이다.
이 책이 내게 달리기의 매력을 가르쳐주었다면.
난 다른 것으로 이 녀석들만치 푸르른 청춘을 한 번 불태워 보고 싶다.
흔히들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곤 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인생은 모든 것에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이 책에선 마라톤과 비슷하지만 다른,
장거리 경주를 통해 삶을 비추고 있었다.
그 중 하나만 잠시 소개하자면,
아무리 옆에서 도와줘도 압박감을 떨쳐내는 일은 결국 자기자신밖에 할 수 없어요.
뭐 이런 것.
저 말이 튀어나온 순간은 달리기를 앞둔 인물에게 한 소리였지만..
뭐든지 그렇지 않을까..
아무리 옆에서 도와주고 다 해주려 해도..
자기 자신이 실행하지 않으면 이겨낼 수 없는 것 같다.
이런 식으로 그동안 하도 많이 들어서 그리 와 닿지 않았던 마라톤에 비유한 인생과 달리,
작중인물들에 몰입하는 순간순간 들리는 그 말들은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요즘 들어 선책안이 현저하게 떨어짐을 느꼈던 내게 모처럼 만족스러움을 안겨준 책.
책을 읽는 동안에나, 책을 읽지 않을 때나 여러모로 내게 만족감을 선사한 책.
평점 ★★★★☆
인상깊은 구절-
조급해 하지 말고 걷자.
그렇게 하다 보면 틀림없이 달릴 수 있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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