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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11. 20.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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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생각 없이 클릭했던 게시물에 있던 글.

반성16
술에 취하여
나는 수첩에다가 뭐라고 써 놓았다.
술이 깨니까
나는 그 글씨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세 병쯤 소주를 마시니까
다시는 술마시지 말자
고 써 있는 그 글씨가 보였다.

혼자 킥킥대며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엔 그냥 어떤 네티즌이 끄적인 글인줄로만 알았다.


반성99
집을 나서는데 옆집 새댁이 또 층계를 쓸고 있다.
다음엔 꼭 제가 한번 쓸겠습니다.
괜찮아요, 집에 있는 사람이 쓸어야지요.
그럼 난 집에 없는 사람인가?
나는 늘 집에만 처박혀 있는 실업잔데
나는 문득 집에조차 없는 사람 같다.
나는 없어져 버렸다.


아무 생각 없이 읽어내려가다가..
아...
아....
아?!

순간 멈칫했다.


반성193
동네 사람들과 함께 무너진 언덕길을 닦았다.
삽질을 하는데 회충만한 지렁이가
삽날에 허리가 잘려 버둥거린다.
지렁이는 재수없이 당했다.
사람들은 다만 길을 닦았을 뿐이고
지렁이는 두 동강이 났을 뿐이다.
모두들 당연한 일을 하는데
땅속에 묻혀 보이지도 않는 지렁이.
모두들.
국토분단이 재미있다.
두 동강이 나고도 각자 살아가는 지렁이
붙을 생각 아예 없는 지렁이.
자웅동체, 자급자족
섹스 걱정 전혀 없는
지렁이
지렁이
재미보는 지렁이.

아..
아..
아..!!
불현듯 검색창에 저 시들의 제목을 검색해보았다.

김영승 시인의 반성이라는 시집에 있는 시들이었다.
그리고는 뭔가에 홀린 듯이 바로 질러버렸다.
무척이나 빨라진 택배시스템의 축복속에,
오래 기다리지 않고 책을 받고는..
침대에 누워 쭉 훑어 나갔다.

이 시집이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87년.
그래서일까.
중간중간 한자가 많이 등장했다.
안타깝게도 난 한자를 많이 알지 못했기에..
한자가 등장하는 시들은 그 의미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넘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글로 가득한 다른 시들은..
시가 끝날 때마다 뭔가 복잡한 느낌이 남았다.
같은 단어에 숫자만 바뀐 제목들.
시라기보다는 에세이처럼 느껴질 정도로 통일감과 서사가 있는 시집.

정말 아무런 생각 없이 훑어 넘기면..
뭐 이런 미친놈이 있나, 싶을 정도로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단어들로 가득찬 시들이 담긴 시집.
하지만..



미친놈....이라 뇌까리면서 그냥 넘길 수만은 없는.

내가 내뱉은 미친놈이 화자뿐만 아닌..
나 역시 미친 놈이요 너 역시 미친 놈이요 우리 모두 미친 놈이라는..
씁쓸한 현실이라는 생각 혹은 느낌이 읽는 내내 한 구석에 자리잡았던 시집.

시집을 좋아하지 않는 나.
그래서 수 년만에 처음으로 산 시집.
그리고.
수 년간 간직하고픈 시집.


아픔은 아픔이고
슬픔은 슬픔이고
그리고
기쁨은 기쁨일 수 있게 하소서.
- 반성815 中 일부발췌


  반성 - 민음의 시 6, 개정판  김영승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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