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2. 11.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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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보게 된 건 정말 우연이었다.
책을 고르다가 계산을 하러 가는 길에 무심코 바라본 곳에 새빨간 표지의 책이 보였다.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다 문득 눈에 띈 이름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하인츠 쾨르너였다.
처음 보는 이름 같으면서도 어딘가에서 들어본 듯한 이름이었다.
그래서 정말 무심결에 계산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몇 장을 훑어보았다.
아니 그런데!
이렇게 횡재한 기분이 들 수가!!
이건 마치 오래된 눈깔사탕인 줄 알고 버리려다 보니 먼지 쌓인 다이아모든였을 때 느낄 만한 횡재감이랄까?
무심결에 집어든 책 치고는 너무나도 와 닿는 이야기들이었다.
제목에서 알다시피 총 열네편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책은 동화의 형식인데 그렇기 때문인지 당연하다고 간과하던 내용들을 새삼스레 깨닫게 만들어준다.
우선 <한 편의 동화>라는 편은 이런 내용이 있다.
정원사부부가 키우는 나무가 있는데, 그들은 그 나무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가지치기를 한다.
나무는 나무 나름의 이유로 어떤 형태로 자라려고 하는데,
정원사부부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계속 잘라내자 슬퍼하며 자라는 것을 멈춘다.
어느 날, 그 나무 주변을 지나가던 소녀가 있었는데, 소녀의 눈에는 나무가 슬퍼하는 것처럼 보였다.
소녀는 나무의 슬픔을 보고 자신의 부모님께 하소연하지만,
부모 또한 정원사부부와 마찬가지인 '어른'인지라 그 하소연을 이해시키려 한다.
이 편을 보며 부모로서의 사랑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자식들이 잘 자라기를 원하지만, 한 편으로 부모들의 틀에 맞춰서 자라기를 원하기도 한다.
그렇게 자식이 원하는 것을 하나 둘 못하게 막다 보면,
아이들은 어느샌가 원하는 것을 찾으려는 것을 멈추고 그저 부모의 뜻대로 따르기만 하기에 이른다.
진정 사랑한다면 원하는대로 자라게끔 보살펴줘야 하는 건 아닐까.
글쎄. 이렇게 생각은 하지만 정작 내가 부모가 된다면, 정원사 부부가 나무를 대하는 것처럼,
내 자식을 그렇게 대하지 않으리라고 장담은 못 할 것 같다.
내가 바랐던 것처럼 아이들을 키울 순 없다고 하더라도, 최대한 노력을 해야할 것 같다.
소녀의 부모가 소녀를 납득시키려고 애쓰며 했던 말이 자꾸만 맴돈다.
[너도 네가 바랐던 것처럼 늘 그렇게 자라진 않았단다. 너도 그럴 수가 없었어.]
두 번째 작품인 <그 후 어떻게 되었는가>는 첫번째 작품의 후속편격이다.
작가가 동일하진 않고, <한 편의 동화>를 읽으며 어느샌가 속편을 쓰고 있었다는 작가의 작품이다.
이 편에서는 위에서 그냥 돌아갔던 소녀가 용기를 내 나무와 가까이하면서 변화하는 내용이다.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만 자라주길 바랬던 것이, 정작 그 나무에겐 고통이었다는 걸 깨닫고 변화하는 정원사부부.
소녀의 순수함으로 인하여 다시 자라는 나무와 그걸 보고 변화한 정원사부부.
그리고 소녀와 나무를 보며 삶의 새로운 용기를 얻는 '어른들'
이 이야기가 짧지만 아주 따스한 해피엔딩으로 담겨 있다.
이 책에 담긴 열네편 가운데 유일한 연작동화였는데,
전편과 다른 작가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매끄럽게 잘 연결되는 이야기였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제3의 대륙> 또한 무척 강인한 인상을 남겼다.
정말 유치하게 느껴지는 이름인 <주다> 대륙, <받다> 대륙, <있다> 대륙.
이 중에서 제3의 대륙으로 칭해지는 대륙은 <있다>대륙이다.
이 편은 <받다>대륙의 소녀들이 미지의 대륙인 제3의 대륙을 향해 떠나면서 겪는 이야기이다.
<주다>와 <받다> 대륙 사람들은 각각 자신들의 대륙의 특징대로 살아오던 사람들이었다.
<받다>대륙의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일종의 법칙 같은 것을 어려서부터 배워온다.
[인생은 현실이다. (중략)
<받다> 대륙 사람들이 살아가는 동안 배우는 좌우명은 하나였다.
<받을 수 있는 것은 모두 받아라, 가능한 한 많이.>]
이 편을 읽으면서 난 너무도 지금 우리네 현실과도 들어맞는 저 이야기들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받을 수 있는 것은 모두 받아라.
뭐랄까.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꽁꽁 숨겨놓은 속내를 까발려졌을 때의 당황스러움이랄까.
흔히 받기만 하는 사람들을 손가락질 하지만,
정작 자신이 받을 기회가 되면 저대로 가능한 한 많이 받으려고들 한다.
다만 그 기회가 없었을 뿐이지, 나 또한 절대 아니라고 발뺌 할 수는 없는 몸이었다.
이러한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튀어나온 <주다> 대륙 이야기는 또 한 편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소녀들에게 무엇인가를,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도 내주고자 했지만,
한편으론 소녀들이 그것을 그냥 받으면 이상한 눈으로 보는 것이었다.
주는 것을 받았을 뿐인데도 말이다.
늘 남에게 무엇인가를 주어야 한다는 원칙이 소녀들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정말이지 저 부분을 읽었을 때의 느낌은, 1회초에 두 번 만루홈런 맞은 투수가 된 느낌이랄까.
뭐라 할 말이 없이 그냥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정말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냥 주는 것,이 가능할까.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주면서 괜찮다고는 하지만,
주는 것을 그냥 받으면, 속으로는 불편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겉으론 아닌 척 하지만 속에서 나도 모르게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그 불쾌감을 너무도 딱 꼬집어냈다.
이 <제3의 대륙> 편이 더욱 놀라운 것은,
각 대륙에 있는 사람들의 행태를 그려내는 것이, 너무도 지금과도 들어맞기 때문이다.
누가 어떤 말을 했을 때, 자기가 듣고자 하는 부분만 뽑아서 마음대로 해석하는 인간들.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한심하게 여기는 전세대.
기존의 풍습을 무조건 배척하며 전세대와의 대화를 단절하는 신세대.
자신들과 다른 생각을 지닌 사람들을 적으로 간주하고 배척하는 인간들.
이러한 인간들의 모습이 분명 짧게 담겨 있는데도 가볍게 넘길 수만은 없을만큼 확 와 닿았다.
한 편, 이 책은 나 자신의 한심한 행태를 비웃는 듯한 편도 담겨 있다.
<네 갈래 길> 이라는 작품은, 바다에 가고 싶어하던 한 처녀의 이야기이다.
제목에서도 알다시피 마을을 나선 처녀는 네 갈래 길에서 헤매게 된다.
네 갈래 길이 있는 데 어느 길로 가야 바다로 갈 수 있는 지 알지 못하던 처녀는 마냥 기다리기로 작정한다.
도시로 가는 사람들, 숲으로 가능 사람들, 농촌으로 가는 사람들을 만나지만,
처녀는 바다에 가고 싶어했기에, 그들을 그냥 보내거나 따라갔다가도 결국은 네 갈래 길에 머무르고야 만다.
처녀가 노인이 되고 나서 그녀에 대해 설명한 부분을 볼 때 섬칫함마저 느꼈다.
[그녀는 이 네 길 가운데 어느 한 길도 선택하지 않았고 어느 길도 끝까지 가보지 않았다.]
난 지금 어디에 서 있는 것인지, 어디쯤 가고 있는 것인지.
나 또한 그녀와 같이 마냥 기다리고만 있는 것은 아닌지 뜨끔했다.
비슷한 스타일의 작품으로 <환상의 새>라는 편이 있었다.
이 이야기는 참새들이 환생의 새를 만나러 가는 여정을 그린 이야기인데,
마지막에 박새에게 일종의 사기를 당하는 내용이다.
헌데 그 사기라는 게 그냥 기분 나쁘거나 황당한 것이 아니라, 아주 유용한 깨달음을 주는 사기였다.
다음은 참새가 따지듯이 말하자 박새가 당연하다는 듯이 답하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누구나 환상의 새가 될 수 있단 말이니? (중략)
그래, 바로 그거야.]
기껏 환상의 새를 쫓아다닌 참새들은 맥이 빠질 수도 있지만,
누구나 환상의 새가 될 수 있다는 것.
즉 자기 안에 있는 가능성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해 주었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인상 깊은 내용이었다.
애당초 환상의 새로 태어난 존재는 없고, 누구나 환상의 새가 될 수 있다는 것.
지극히 비현실적인 이야기같으면서도 동화의 틀 속에 있어서인지 아주 새롭게 와닿는 내용이다.
또 하나 같은 맥락의 이야기가 있는 데, <당신도 한 송이 꽃입니다>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꽃을 노리는 많은 위험을 걱정하며 꽃이 되길 포기하고 안정한 봉오리로 머무르는 꽃이 주인공이다.
주위의 많은 꽃들이 먼저 화사한 꽃을 뽐내지만, 봉오리는 여전히 꽃이 되길 포기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먼저 핀 꽃들이 지기 시작할 무렵,
봉오리는 꽃이 되길 생각해 보지만 이미 너무 오랫동안 봉오리로 남았기에 꽃을 피울 수 있을 지 걱정한다.
그 걱정을 하며 또 오랜 시간을 흘려 보낸다.
책의 구성상 <네 갈래 길> 과 <환상의 새> 뒤에 이 편이 나오는데,
두 가지 이야기에서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한 데 압축한 것처럼도 느껴졌다.
물론 작가들은 다 다르니까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이지만.
어쨌든, 무척 반성하게끔 만들었던 이야기였다.
난 언제나 안전한 길, 확실한 길을 추구하며 그런 길이 보일 때까지 마냥 기다리기만 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좁은 도랑이라도 발을 떼지 않고선 건널 수 없는 법.
일단 그 길이 맞는 지 틀린 지는 가 봐야 하는 거 아닐까.
안전한 길만 추구하다가 꽃 한 번 피워보지 못하고 시들어 버리고 있는 건 아닌 지 나를 되돌아 보게 만들었다.
이 책에 나오는 열 네가지 이야기 모두 버릴 거 없이 감동적인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모두 이야기 하다 보면 한도 끝도 없이 길어질 것 같아서,
사랑과 관련한 단편들의 구절로 마무리짓기로 했다.
[아무래도 그전 같지가 않았다. 겉으로는 아무 일 없는 듯이 행동했지만 두 사람 사이는 갈수록 서먹해져 갔다.
둘 중 어느 누구도 먼저 진정한 대화를 시작하려 하지 않았다.
일단 이야기를 꺼낸 뒤에 결과가 어떻게 될 지 불안했던 것이다.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하다 상처를 입지나 않을까. 상대방을 영영 잃게 되지나 않을까.
혹시 비난을 받지나 않을까 두려웠던 것이다. 이제 두 사람에게 예전과 같은 신뢰감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전처럼 상대방에게 위로와 힘을 얻을 수도 없었다.
만나고 집으로 돌아올 때에도 전처러 기쁘지도 힘이 나지도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의 <사랑>때문에 괴롭기까지 했다.] <마녀모임>
[따뜻한 <사랑>을 나누며 행복을 얻으려 두 사람이 만났다가도
고작 <플라스틱 사랑>만을 주고받는 것에 그치곤 했다.
그 후 뒤이어 찾아드는 차갑고 공허한 감정 때문에 그들은 될 수 있는대로 서둘러 헤어지려고 했다.
그리고 또다시 새 사람을 찾고 시랑하고 헤어지고....] <사랑이야기>
소개하지 않은 단편들도 분량은 짧지만 감동은 긴 이야기들로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정말 뜻하지 않게 보게 되었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감동을 주었다.
불행히도 이 책은 절판된 책이고 더 이상 구하기가 쉽진 않다.
구하기 힘든 이 책을 소장하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다.
그런 책이 엄청난 감동의 소용돌이로 날 끌어들여서 더더욱 다행이다.
아.....땡 잡았다!!!!!!
평점 ★★★★★ +a
인상깊은 구절-
도전할 용기가 없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삶을 한 번도 바꿀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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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7년 팔번째 책.반응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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