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이냐? <플루토에서 아침을> 이란 영화를 시사회를 통해 보았다. 이 영화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영화를 보게 되었다. 내가 알고 있던 건, 저 포스터에 있는 주인공이 남자라는 사실 뿐. 그것을 알았을 때, 어떤 편견이 스멀스멀 솟아오르는 걸 감지했다. 아무 정보 없이 그냥 자주 가는 카페의 시사회를 통해 이 영화를 보게 되었는 데,
시사회가 아니었다면 내가 예매해서 볼 만한 스타일은 아니였다.
뭐야, 퀴어물이야?
난 어느 정도 보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저런 류(?)의 사람들을 편견 없이 바라보질 못한다. 그런데 신기한 건, 그럼에도 그들을 그려낸 영화들은 대체적으로 내 마음에 들었었다. <브로크백마운틴>, <천하장사 마돈나>, <헤드웍>등.. 그래서 편견과 함께 일종의 기대감도 일었던 게 사실이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했다. 다음은 스포일러 방지상 일단 덮어두었다.
뭐야 이건? 오프닝은 스크린 하단에 필기체(?)의 영어제목과 함께 흥겨운 올드팝이 흘러 나오며 시작한다. 그 때부터 어떤 느낌이 왔다.
올드팝이 계속 나오겠는 걸?
자세히 알아보진 않아서 정확히 기억나진 않았지만, 처음에 흐르는 곡을 듣고, 어디선가 이 영화의 매력포인트로 추억의 올드팝을 꼽았던 게 떠올랐다. 그 오프닝의 음악이 너무 흥겨워서 초반부터 영화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리고 영화는 계속해서 자신의 스타일로 밀고 나간다. 영화는 처음에 나온 필기체의 영어가 계속 등장한다. 일종의 씬넘버와도 같이, 계속 숫자와 소제목(?)이 바뀌는데, 서른개가 넘는 그 제목들이 모두들 시적인 느낌을 준다. 게다가 전혀 상관 없는 제목이 아닌 그 단락의 이야기와 딱 들어맞기에 더욱 관심을 끊지 못한다. 계속 이야기가 바뀐다고는 하나, 옴니버스 영화같은 방식이 아니라, 주인공의 인생 중에서 중요한 사건들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요약해 놓은 형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루함이 없이, 계속 새로운 사건을 집중하게 되는 효과도 있었다.
재밌냐? 이 영화의 주인공인 '키튼' 키튼의 일대기라고 볼 수도 있는 이 영화에서 내가 나눠본 큰 갈래는 세 가지다.
1)엄마 찾아 삼만리. 2)사랑은 아무나 하나. 3)먼 나라 이웃 나라.
일단 3번부터 이야기 하자면, 키튼의 조국은 아일랜드이다. 아일랜드의 끊임없이 반복된 독립전쟁(?)이 이 영화에도 등장한다. 키튼의 친구인 어윈은 그 운동에 참여하게 되는데, 그렇기 때문에 키튼의 인생에서 아일랜드의 문제는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상당한 영향을 맺게 된다. 특히 키튼이 사랑을 했던 모호크밴드의 보컬 빌리. 그 또한 비밀 조직의 일원이었고, 키튼은 알게 모르게 아일랜드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키튼은 영화 내내 단 한 번의 사랑이 있었다고 말한다. 키튼은 빌리와 이별할 때 당신의 사랑은 거짓이었다는 식으로 이별을 받아들인다. 따라서 키튼이 말한 단 한 번의 사랑이 빌리를 뜻하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키튼은 영화에서 런던으로 이동하게 된다. 이유는 1번에서 말한 엄마를 찾기 위해. 이 이야기는 1번에서 다시 하기로 하고, 일단 런던에 오게 된 키튼의 런던 적응기도 큰 갈래다. 키튼이 런던에 머물면서 만나는 인연들과, 사건들. 이 영화에서 안타까운 웃음을 주기도 했던 장면이, 키튼의 취조실 장면인데, 키튼이 아일랜드인이기에 받게 되는 오해는 3번의 느낌을 받게 만들었다.
다음 2번으로 넘어가자면, 키튼은 남자로 태어났지만, 여성성을 지닌 존재다. 주위에서는 호모니 게이니 변태니 하면서 그를 무시하곤 한다. 그런 그가 사랑을 하는 건 너무도 힘들어 보인다. 내가 추측한 키튼의 사랑은 초반부 키튼이 고향을 떠나면서 만난 빌리인데, 키튼이 친구의 죽음을 겪은 뒤, 빌리의 비밀조직을 엿먹이게 만든 행동 때문에 빌리는 떠난다. 키튼은 빌리를 떠나 보내면서, 당신이 준 사랑은 거짓이었단 걸 알고 있다고 씁쓸하게 말한다. 앞서 말했다시피, 키튼은 몇몇의 인연을 만나면서 줄곧, 단 한 번 사랑이 있었다, 라고 말한다. 그것이 그냥 하는 소리였는지, 아니면 빌리를 그리워하며 하는 말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확실한 것은, 키튼이 사랑을 하기란 너무 힘들었다는 것이다.
이제 영화의 가장 핵심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는 1번. 키튼은 태어나자마자 엄마로부터 버림 받은 일종의 고아이다. 중요한 건 아빠로부터도 버림 받았다는 사실이다. 성정체성에 따른 일련의 사건들을 겪은 뒤, 키튼은 엄마를 찾아 런던으로 떠난다. 엄마를 찾으러 간 런던에서도 많은 일들을 겪는다. 이 부분의 자세한 이야기는 스포일러 방지상 생략하기로 하고, 키튼이 아빠를 제대로 다시 만나면서 하는 이야기가 있다. 노래로도 있던, '내가 웃는게 웃는게 아니야', 라는 말은 키튼에게 딱 들어맞는다. 영화 내내 키튼은 소위 말하는 미친놈마냥 웃어댄다. 나는 너를 볼 수 있지만 넌 나를 볼 수 없는, 곳에서의 둘의 만남. 왜 사냐면 웃지요. 라는 말이 떠오르는 키튼의 웃음. 그리고 그 웃음의 철가면 뒤에 숨겨진 깊은 슬픔을 눈치챈 아빠. 아빠를 찾은 키튼의 슬픔과 기쁨이 뒤섞인 감정. 그 둘의 만남은 가장 극적인 장면 중에 하나였다.
그래서? 이 영화는 키튼의 일대기라고 할 수도 있는 이야기들이 지루하지 않게 연결되어 있다. 숱한 유머러스한 상황들의 반복. 그 중간중간 짧지만 간과할 수 없는 심각한 이야기들. 이러한 연결이 작위적이지 않고 아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작품이다.
결론만 말하자면 이 영화는 정말 제대로 진심으로 강력히 완전 진짜 엄청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영화도 좋았고, 영화 내내 흘러나오는 올드팝도 좋았다. 연기도 좋았고, 연출도 좋았다. 극장에서 이렇게 많이 웃어본 적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극장에서 이렇게 많이 울어본 적 또한 정말 오랜만이었다. 시사회가 좋은 것 중에 하나는, 내가 예매하지 않았을 영화를 접했을 때의 그 신선함이라고나 할까. 그냥 개봉했다면, 퀴어물이라는 편견 때문에 보지 않았을 영화지만, 시사회를 통해 어떤 의무적(?)으로 이 영화를 보았더니 이토록 좋은 영화였다. 이 영화를 못 보았더면 얼마나 후회했을까 싶다.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극장에서 또 보고 싶은 영화'를 만난 것 같다. '극장에서 보고도 소장하고 싶은 영화'를 만난 것 같다. 이 영화 개봉하면 또 보러 가야겠다. 이런 느낌 정말 오랜만이다. 안타까운 건, 아무래도 퀴어물적인 요소가 있다 보니, 거부반응을 일으킨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봤는데, 대부분의 일행들이 한 명은 강추 한 명은 비추, 식으로 일행들이 반반씩 갈렸다는 점. 물론 나와 같이 본 친척 또한 지루했다고 했다. 하.지.만.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영화관안에 웃음이 가득했다는 점은, 보고 나서 후회는 안 할 작품이란 것의 반증이 아닐까 싶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영화는, 정말 제대로 진심으로 강력히 완전 진짜 엄청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덧하나. 주인공 키튼 역의 '킬리언 머피'를 어디서 봤는지 계속 생각해봤는데, '배트맨 비긴즈'에서 배트맨에게 최면같은 걸 걸었던 조나단 크레인 박사였다!! 당시 상당히 인상 깊었던 인물임에도, 큰 관심을 안 가져서 이름을 몰랐는데, 이 영화에서 다시 만나다니! 킬리언 머피. 앞으로 주목하기로 했다.
덧둘. 이 영화 극장판 번역 정말 기가 막히다. 정말 흔히 우리가 쓰는 말로 의역한 부분도 있는데 그 부분이 정말 기가 막히다. 개인적으로 이 극장판 번역으로 DVD판까지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극장에서 보기를 강력히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