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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2. 21.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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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하는 것조차 숙연해진다...

요즘은 참 많은 글들을 볼 수 있는 세상이다.
신문에서 모니터에서 책에서 전단지에서 핸드폰에서 기타등등..
모든 것에서 어떤 형태의 글이건 접할 수가 있다.
그 중 나의 것으로 취할 수 있는 것, 나에게 정보 혹은 지식을 주거나 생각할 꺼리를 만들어 주는 글.
그런 글을 찾기는 참 힘들어졌다.
그렇기 때문일까.
그런 글을 읽게 되면 다른 이들에게 추천하고픈 욕구를 느낀다.
그런데 이 글을 그냥 단순하게 그러기엔 너무나 숙연해진다.
추천한다, 꼭 봐라, 강력추천, 안 보면 후회할 껄...등등..
어떤 추천사도 장난처럼 느껴질 만큼 안타까운 글이다.

"내 부하는 배신자" 라는 제목을 단 갱스터무비 포스터를 접했을 때의 편견처럼..
뻔하겠네, 라는 것이 [핵 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 이란 책을 처음 접했을 때의 첫 느낌이었다.
핵이 폭발하고 최후까지 남은 아이들을 이야기하겠지...

그런데, 그 수준이 아니다.
이 책이 왜 아동카테고리에 있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핵이란 것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아주 자세하게, 그러면서도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다.
[참고로 내가 본 모든 서점에서 아동, 어린이 혹은 청소년 카테고리에 있었다.]

이건 엄연히 소설이다.
그런데 이것이 단지 허구에 불과한 것일까?

불과 몇 해전  노스트라다무스의 뜬구름잡는 듯한 함축적인 글귀만을 가지고서도,
종말이 오네 어쩌네 하면서 온 세계가 떠들썩했던 적이 있다.
지금도 아무 과학적 근거도 없는 사이비종말론자들에게 휩쓸려 곧 죽을 것처럼 정신 못차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이 책과 같이 아주 상세하고 우리가 당장 쓰는 표현들로 적힌 글은 신경을 쓰지 않는다.
엄연히 지금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고, 지금까지의 사건들을 통해 그 처참한 피해들이 드러났음에도,
사람들은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나 종말론자들의 종말론보다도 이 책을 믿지 않을 것이다.
아니 믿고 안 믿고는 둘째 치고 이런 이야기를 아는 사람조차 드물 것이다.
이 책은 단지 아이들이 읽을 만한 동화책이 아니다.
어른들이 읽어야 하는 책이다.

핵은 엄연히 지금 우리 주위에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의 위험성도 일련의 사건들로 여실히 드러난 상태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편하다는 이유로 계속해서 사용하고,
그 위험은 나날이 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위험을 보려고 하지를 않는다.

그 대안을 찾고 제시할 능력이 내겐 없다.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 위험성은 제대로 보고 방지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그 위험에 대해선 너무 간과하고 있다.

핵..방사능유출은 순간이다.

이 책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서술로 시작된다.

[우리 부모님, 또 대부분의 어른들이 생각한 것처럼 상황이 벌어지진 않았다.
서로 간의 갈등이 심해져 결국 전쟁이 터진다 해도 최악의 상황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전쟁을 피해서 알프스 계곡이나 지중해의 작은 섬으로 재빨리 숨어들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은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모든 일은 한순간에 벌어졌다.]

이렇게 아주 현실적인 우려를 안기면서 시작한 이야기는,
핵이 휩쓸고 지나간 상황을 그려내면서 그 속에서 살아남은 자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 시간들이 너무도 처참하다.
그냥 잔인한 묘사를 한 '픽션'라고 치부하기엔 이미 과거에 벌어졌던 일들이기에 섬뜩하기까지 하다.

공포와 굶주림이 이성을 마비시키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더 오래도록 살아남기 위해 이웃, 아니 경쟁자를 죽이는 일도 서슴치 않는다.
교리나 예절 따윈 사라진 지 오래고, 오로지 생존본능으로 자기만 살기 바쁜 모습이다.
심하다, 라는 생각을 하기엔 그들의 상황이 너무도 절박하다.
아니, 과연 나였다면 안 저럴 수 있을까?
그들도 평화로운 시절에는 모두들 따스한 이웃들이었다.
유식하고 매너좋고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들이 생존이란 현실의 문제 앞에서 변하는 모습.
과거엔 상상도 못했던 짓들을 서슴치 않고 벌이는 모습.
죽어가는 이들의 고통스런 몸부림.
그들을 바라보는 살아남은 자들의 두려움.

마치 살얼음 밑의 호수를 투명하게 그냥 있는 그대로 보여주듯이, 그 모습들을 고스란히 묘사하고 있다.
차라리 비가 쏟아지듯이 슬픔을 그대로 표출하면 덜 안타까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까딱하면 얼음이 산산조각나고 호수속에 빠져버리는 것처럼,
저런 모습들을 있는 그대로 상세하게 그려내는 주인공이 안타깝고 위태롭고 더욱 슬퍼보인다.


그래도 희망이라.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옛날 옛적 동화책에서나 가능하던 해피엔딩을 기대했다.
흔하디 흔한 고난을 견뎌내고 결국엔 잘 살았다는 이야기가 기다리길 기대했다.
이건 그냥 소설이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지도 모를 일이었으니까.
아무 희망도 없다는 건 너무 절망스러운 일일 테니까.

하지만 이 책은 부질없는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말 같지도 않은 해피엔딩 따위를 선사하지 않는다.
지극히 현실적인.
비가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는 날씨처럼.
꺼질 수도 있고 안 꺼질 수도 있는 바람 앞의 촛불같은 엔딩을 보여준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이 책은 어디까지나 소설이다.
하지만 엄연히 핵은 우리 주위에 존재하고 있고,
일본에 떨어진 폭탄이나 체르노빌등의 사고에서 방사능의 위험성은 익히 알려져있다.
이 책에는 엄연히 우리 주위에 존재하고, 숱하게 과학적으로 입증된 처참한 모습들이 그려져있다.
그것도 우리가 쓰는 그 언어들로. 아주 직접적으로.

두리뭉수리하게 아무 근거도 없이 써적혀진 예언보다도 더 새겨들어야 할 이야기가 아닐까.
난 과학맹신주의를 경계하지만,
이미 인간의 잘못으로 입증된 과거의 일은 과학을 떠나 근거로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읽어야 한다.
아이들이 보기엔 너무 참혹한 광경이라 망설여지지만,
판타지나 무협등의 칼부림을 즐기는 정도의 아이라면 이 책의 현실적인 잔인함을 보면서,
경각심을 가질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은 어른들이 읽어야 한다.
추천하는 것조차 숙연해질 정도로 묵직한 책이다.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이지만 읽고나면, 아니 읽는 내내 뭔가 묵직한 걸 안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다 읽고 내려 놓은 후에도 그 묵직한 먹먹함은 사라지질 않았다.

희망과 절망이 공존하는 듯한 주인공의 마지막 구절과도 같이...

너희들의 세상은 평화로운 세상이 되어야 한다.
비록
그 세상이 오래 가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다.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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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닷컴

2천7년 십번째 책.

 핵 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 (양장) - 올 에이지 클래식  구드룬 파우제방 지음, 함미라 옮김, 최혜란 그림
동화를 크게 어른들의 세계를 이해시키는 이야기와 어른들의 세계를 미래를 살아갈 아이의 입장에서 통렬하게 비판하는 이야기로 구분한다면, 이 책은 압도적으로 후자에 속한다. 전혀 거침없이, '천벌 받은 부모들!'이라는 말을 내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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