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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2. 5.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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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만남.
내가 그녀를 만난 것은 한 대형서점의 매대였다.
당시 일본소설을 읽는 데 빠져있던 나는 자연스레 일본소설매대로 걸음을 옮겼고,
무언가 아련함을 풍기는 표지에 홀려 무심코 집어들었던 책이 있었다.
대충 훑어보면서 딱히 어떤 이미지는 새기지 못했지만 책을 내려놓으면서,
의도와는 상관없이 난 그녀의 이름을 새기게 되었다.
[사랑, 사라지고 있습니다] 라는 서정감이 물씬 풍기는 그 이름을.


재회.

그 이후 다시 그녀를 만날 일은 없었다.
유명한 작가의 이름으로 혹은 유명한 수상작의 이름으로 수식할 만한 내용이 없었기 때문인지,
그녀의 존재 자체는 일본소설이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희미한 상태였다.
그러다 근래에 자주 이용하던 전철역서점을 지나치던 와중에,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무심코 내 손길을 잡아끄는 외모의 그녀가 눈에 들어왔다.
두 번씩이나 같은 모습과 같은 이미지로 나를 찾은 그녀를 난 그대로 먼지속에 내버려둘 수 없었고,
더 생각하지도 않고 무작정 계산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첫인상.

일단 370이 조금 못되는 페이지에서도 알 수 있지만..
호리호리한 타입의 동족들과는 달리 약간은 풍만한 두께를 지녔다.
그리고 흐릿한 나무숲사이로 들어가려나는 듯한 흐릿한 여자의 뒷모습이 있는 표지에서도 느껴지지만..
무언가 사라질 것만 같은, 막 떠나려는 듯한 그럼 인상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 인상이 나를 두 번이나 끌어당겼던 것처럼,
그녀를 내 소유로 만든 이후에 다시 본 그녀의 인상은 일단 만족스러웠다.


성격.

그녀를 홍보하는 문구에서도 나타나지만, 미스터리 러브 스토리.
즉 약간의 추리성이 가미된 멜로랄까.
아니 멜로성이 가미된 추리랄까.
냉정하게 따지자면 이도저도 아닌 듯한 느낌이다.
표지에서 드러나는 그러한 이미지가 그대로 작품속에서도 나타나있다.
이건 칭찬이 아니다.
그 흐릿한 상태가 시종일관 유지된다.
미스터리 러브 스토리라고 단언하기에는 애매한,
약간은 우유부단한 스토리라고 그녀의 성격을 단정짓고 싶다.


대화.

그녀의 이야기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일단 줄거리에서 드러나다시피, 유령의 죽음을 파헤치는 주인공과 유령의 이야기다.
주변에서 쉽게 만날 것만 같은 주인공 와타루.
그가 사는 집에 있는 유령과의 만남과 유령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점을 파헤치는 과정.
그리고 그러한 시간의 흐름속에서 변하는 와타루의 감정을 그려내고 있다.
일단 유령을 만나기까지의 과정은 무척 현실적이다.
어? 어쩌면 나도?
이런 생각이 순간 스쳐지나갔을 정도로 평범한 일상속에서 비현실적인 만남이 이루어진다.
평범한 회사원의 일상을 그려낸 부분은 만족스러운 수준이었다.

유령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
그 의문을 파헤치는 과정은, 아무래도 주인공이 탐정이나 형사가 아니기 때문이겠지만,
다소 맥빠지는 수준이었다.
추리라기보다는 과거를 밟아가는 수준인지라, 어떤 긴장감같은 건 쉽게 느끼지 못했다.
그냥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면 과거를 밟아가는 수준인지라,
마지막의 반전 아닌 반전 또한 그냥 원래 그랬던 것 같은, 어떤 충격이나 놀라움은 느끼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유령인 치나미와 와타루의 감정변화.
아무래도 주인공 와타루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이라 그런지,
치나미의 감정을 알아보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반대로 주인공인 와타루의 감정변화는 꽤 상세하게 그려져 있다.
그렇게 변하기를 거부하지만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꾸 변해져가는 본인의 감정.
그 감정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을 무척 잘 그려냈다.
어떤 이들에겐 싱거울지도 모르겠지만,
와타루의 의지와 상관없이 변해가는 감정을 그려내는 부분은 무척 공감이 갔다.
사랑의 상대가 유령이 아닌,
가까운 관계의 누군가에게 사랑을 품어봤다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그러한 감정변화의 묘사였다.


이별.

그녀와의 만남은 의외로 짧게 걸렸다.
출퇴근길에만 만났지만 이틀째 출근길에 마무리 지었으니,
시간상으로는 대략 세시간이 좀 모자란 시간이었다.
그녀와의 이별을 겪으면서 느낀 생각은,
첫인상만큼의 마지막인상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겉에서 드러나는 첫인상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였을까.
막상 그녀의 이야기는 실망스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내 만족감을 채우기엔 부족해 보였다.
그래도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은 심심하지 않았기에, 좋은 모습만 기억하려 한다.


추억.

그녀가 남긴 말 중에서 특히 곱씹어볼 만한 말들을 추려보았다.

결국 인간이란, [중략] 자기 마음대로 하는 무리와 그것에 휘둘리는 사람,
그 두 종류로 되어 있는 거 아닐까요?

그럴지도 모른다.
양쪽이 다 섞여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개는 그 어느 한 쪽으로 나뉘어진다.
나 자신을 굳이 나눠보자면, 휘둘리는 쪽일 것이다.
내 마음대로 하기보단 따라주는 경우가 더 많으니까.
둘 중 어떤 게 더 나은 인간이라 따져보는 것도 우스울 것 같다.
자기 마음대로 할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언제나 그럴 수만은 없는 노릇이니까.
그러고보면, 내 마음에 휘둘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가.
물론, 휘둘린다는 말 자체가 다소 비하하는 느낌이 들어있지만 말이다.
다소 완화해서 표현한다면 내 기분에 맞춰주고 내 의견을 따라주고 나를 위해주는..
그런 사람이 곁에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 지..
한 번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던 말이었다..

[사랑,사라지고 있습니다]
시간이 난다면..심심하다면... 한 번 접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강력추천할 만한 어떤 매력은 없지만, 만남을 후회할 만큼 형편없는 것도 아니니까.


 사랑, 사라지고 있습니다  마쓰오 유미 지음, 김해용 옮김
뜻모를 사랑의 형태를 찾아가는 미스터리 러브 스토리. 나와 고양이 두 마리, 그리고 유령애인의 동거를 그린 소설이다. 주인공 와타루가 유령인 치나미의 의문점을 풀어줄때마다 그녀의 몸, 즉 실체가 조금씩 보이게 된다는 독특한 설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평점 ★★★☆

인상깊은 구절-
어떤 일이든 눈에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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