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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jena rss
2006/11/13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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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이 되자 다들 도시락을 꺼내기 시작했다.

내가 일하는 회사에는 구내식당이 있지만 별도로 식비를 지불해야 한다.

따라서 많은 직원들이 도시락을 싸 오는 편이다.

난 이 곳에 일하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항상 식당에서 사 먹었다.

도시락을 들고 오기가 너무 귀찮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도시락을 싸 오는 직원들이 많아지고,

우리 팀원들 대부분이 도시락을 싸 오면서부터 왠지 모를 소외감이 느껴졌다.

아니, 소외감을 느낀 것보다는 도시락에 대한 그리움이 먼저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학창 시절, 급식이 실시된 이후로 단 한 번도 도시락을 싸 보질 않았다.

수년 만에 만나는 도시락이 반갑고 그리웠다.


내가 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 우리 학교는 급식을 실시하지 않았다.

아주 당연하게도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녔다.

저학년일 때는 오전수업만 했기에 도시락을 쌀 필요가 없었으나,

고학년에 올라가면서 오후수업까지 하게 되어 도시락을 싸야만 했다.

도시락에 대한 추억은 참 많은 편이다.

어릴 때 괜히 여자애들 도시락에 개구리나 메뚜기 같은 걸 넣어 놓는 장난도 했고,

쉬는 시간에 도시락을 재빨리 먹기도 했었다.

그래 놓고 정작 점심 시간 때는 다른 아이들의 도시락 반찬을 뺏어 먹는 짓도 참 많이 했었다.

아니면 점심 시간에 일찍 운동장에 나가 친구들과 놀 공간을 확보하고는 했었다.

당시에는 엄마에게 맛있는 반찬을 해달라고 하면 다음 날 도시락에 그 반찬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고마운 생각을 가져보진 않았던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기엔 난 너무 어렸고 놀기 좋아하고 까불대던 녀석이었다.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때도 급식이 아닌 도시락을 싸야만 했다.

당시만 해도 급식은 부잣집 동네에 있는 학교에서만 하는 줄로 알았다.

그렇기에 도시락을 싸가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어머니가 새벽에 내 도시락을 싸주는 것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언젠가 도시락을 먹다 머리카락이 밥에 들어 있던 적이 있다.

난 먹던 밥알을 모두 뱉어 버리고 밥통을 그대로 쳐 박아 두었다.

그러고선 다른 녀석들의 밥을 얻어 먹으러 다녔다.

당시에는 뺏어 먹는다는 개념보다는 서로 맛있는 반찬이 있으면 나눠 먹고,

밥이 모자라면 더 주기도 하고, 많다 하면 나눠 주기도 했다.

보통은 친한 녀석들끼리 책상을 한 곳에 모아 놓고, 그 위에다 각자의 반찬통을 한 꺼번에 공개한다.

그 후에는 각자의 밥통을 들고 한 곳에 모여 있는 반찬통에서 반찬을 집어 먹었다.

대부분은 반찬들이 달랐기 때문에 질리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기도 했다.

그 후에도 머리카락이 내 도시락에서 나온 적이 몇 번 있었다.

밥에서만 나올 때는 상관 없었지만, 모두가 같이 먹는 반찬에서까지 머리카락이 나오자

그 날 엄마에게 심하게 따진 적이 있다.

얼마나 칠칠치 못하면 아들 도시락에 머리카락이나 빠트리냐고.

지금 생각해보면 대체 얼마나 싸가지가 없었으면 엄마에게 그런 소리를 했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당시에는 심한 인상을 쓰면서 그런 소리를 지껄였다.

어머니는 미안하다며, 조심하겠다고 했다.

그 후로 한 동안 머리카락이 도시락에서 나오는 일은 없었다.

아무 생각이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한 가지 기억나는 일이 있다.

하루는 새벽 일찍 잠이 깬 적이 있어서 물을 마시려고 부엌에 나갔다.

잠이 덜 깬 상태라서 자세히 보진 못했지만,

어머니는 머리에 무언가를 덧씌운 채 도시락을 싸고 계셨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당시엔 그저 물만 먹고 다시 자러 들어갔다.

그냥 엄마가 도시락 싸는 풍경 중 하나로만 기억할 뿐이었다.

도시락을 싸는 것은 고등학교까지 이어졌다.

당시에 막 급식시설이 들어서던 때라, 급식과 도시락 중 선택을 할 수 있었다.

처음엔 급식비가 아까워서 엄마에게 도시락을 싸달라고 했다.

엄마는 아무 말 없이 그 전까지 해왔던 것처럼 내 도시락을 싸주었다.

도시락을 싸 오던 녀석들은 나 말고도 꽤 있었다.

중학교 때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자연스레 책상을 모아놓고 반찬을 공유하며 밥을 먹었다.

그러다 언젠가 또 다시 내 도시락에서 머리카락이 나왔다.

다른 녀석들도 한 두 번 정도는 겪었던 일이고, 나도 별 신경을 안 쓰던 때라 그냥 무시하고 밥을 먹었다.

하지만 하루로 끝나질 않았다.

언젠가부터 도시락을 먹으면서 머리카락을 골라내는 것이 점심시간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하루는 신경질을 내며 따졌다.

어떻게 도시락을 싸길래 매일같이 머리카락이 나오냐고. 엄마 맞냐고.

아들 도시락을 이렇게 형편없이 싸주는 엄마가 어디 있냐고.

난 아직도 왜 그 정도로 심한 소리를 어머니께 내뱉었는지,

또 어머니는 왜 그러한 소리들을 군소리 없이 받아주며 미안하다고 하셨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 날 이후 난 어머니가 싸준 도시락을 열어보지도 않고 그대로 갖고 오곤 했다.

내 점심은 다른 녀석들의 도시락을 공유하면서 해결했다.

우린 친구였고, 그런 것에 신경 쓰는 녀석들은 아무도 없었다.

나 또한 친구들에겐 관대했다.

집에 있는 시간보다 밖에 있는 시간이 많았고, 엄마보단 친구들과 있는 게 좋았다.

집에 들러서 옷을 갈아입고 친구들과 놀러 갔다가 집에 들어갔을 때,

엄마 혼자 식탁에 앉아 내가 그대로 가지고 돌아온 도시락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난, 머리카락 골라가면서 불편하게 먹어보라, 며 아무렇지도 않게 내 방에 틀어박혔다.

도시락 반찬이 뭐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새벽에 싼 도시락을 밤에서야 어머니가 먹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보온 도시락이었어도 식어버렸을 시간이었다.

그 후 급식시설이 안정화되고 도시락을 매일같이 들고 다니는 것도 귀찮아졌을 무렵,

난 엄마에게 더 이상 도시락을 싸지 말라고 통보했다.

엄마가 싸준 도시락보다 급식이 훨씬 맛있을 거 같으니까 앞으로 급식을 먹겠다고.

그렇게 통보했다.

엄마는 그러마, 고 그 이후 급식비를 내주셨다.

급식은 확실히 편했다. 거추장스러운 도시락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었다.

무거운 도시락을 안 들고 다닌 뒤로, 가벼워진 가방을 들고 나와 친구들은 밤 늦게 놀러 다니곤 했다.

고3이 되고서도 도시락을 싸진 않았다.

학교에서 고3들에겐 야자시간에까지 급식을 제공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난 귀찮은 도시락 대신 급식을 선택했고, 결국 도시락을 먹을 수 있던 마지막 기회도 날려버린 것이다.

대학에 들어가 점심을 대학식당이나 학교주변 식당에서 해결했다.

대학 생활은 자유로웠다. 난 집에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집에서 밥을 먹는 시간조차 줄어들었다.

1주일에 서너 끼 정도만, 그것도 아침만 집에서 먹곤 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대학 생활을 하면서 도시락을 먹을 기회는 없었다.

입영 날짜를 확정 받고, 군대에 들어갈 날이 다가왔다.

군대에 들어가면 당연히 정해진 식단에 따라 배식을 받게 되어 있다.

도시락 따위는 필요 없는 생활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도시락이 필요 없는 곳으로 가는 나를 보며 안심하신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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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언제나닷컴 | 2006/11/15 23:09 | DEL
******************************************* 저작자: 메일: ******************************************* 더 이상 내 도시락을 쌀 필요가 없는 곳으로 가신 것일까. 입대를 한 달여간 앞 두고, 친구들과 술을 마셨다. ..
BlogIcon PinK모모 | 2006/11/13 23:32 | PERMALINK | EDIT/DEL | REPLY
새로운 제목의 습작이 올라왔군요 'ㅁ '!!
읽다가 문득 Hee씨의 실제 이야기인가? 하고 흠칫"하고 놀랄때가 가끔 있어요ㅎㅎㅎ
BlogIcon Hee | 2006/11/14 20:12 | PERMALINK | EDIT/DEL
아무래도..
1인칭이다 보니..
제 생각이 상당히
많이 투영되는 편이죠...orz...
BlogIcon capella | 2006/11/14 11:29 | PERMALINK | EDIT/DEL | REPLY
엄마의 사랑이 담긴 도시락 그리워요~ 맛있었는데 ㅠ
BlogIcon Hee | 2006/11/14 20:12 | PERMALINK | EDIT/DEL
전 요새..
도시락 싸가는데..
너무 무거워요..orz..
BlogIcon 와니 | 2006/11/14 19:08 | PERMALINK | EDIT/DEL | REPLY
요즘 아이들은 도시락의 의미를 알라나..
전 가난하던 시절 어머님이 아침 일찍 일 나가시느라 도시락을 못싸주셨는데..
그래도 밥을 주시려고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싸서 매일 학교에 오셨던 기억이 나네요
BlogIcon Hee | 2006/11/14 20:15 | PERMALINK | EDIT/DEL
아침에 도시락 놓고 가면..
학교에 찾아와
도시락 건네주고 가시던 어머니들..
종종 있던 걸로 기억합니다...
도시락의 로망은 안 먹어본 사람은 모르겠죠..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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